그리고 나도 숫자밖에는
관심이 없는 어른들처럼 되어 버릴지 모른다. 내가 이제 다시 그림물감
한 갑과 연필 몇 자루를 사온 것은 이것 때문이다. 내 나이 여섯
살 적에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
외에는 전혀 손대 보지 못한 내가 이 나이에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
건 힘든 일이다. 나는 물론 힘이 닿는 한 그의 모습과 가장
비슷한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하겠다.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는지
정말 자신이 없다. 어떤 그림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어떤 그림은
아주 다른 것이 돼 버린다. 키를 어림잡는 데도 좀 서투르다.
이쪽 어린 왕자는 너무 크고 저쪽은
너무 작다. 옷 색깔을 놓고도 역시 망설여진다. 그래서 나는
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되건 안 되건 이럭저럭 더듬어
본다. 필경은 아주 중요한 부분에 가서 잘못을 저지를 것만 같다.
그래도 나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. 내 친구는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
않았다. 어쩌면 내가 자기와 같으리라고 생각했던가 보다. 그러나
불행하게도 나는 상자를 통하여 그 속에 있는 양을 볼 줄 모른다.
어쩌면 나도 얼마만큼은 어른들처럼 되어 버린 것 같다. 아마 늙어
버렸나 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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