"그런데.....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?"

그러나 그 애는 무슨 중대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같은말을 되풀이했다.

"저..... 양 한 마리만 그려 줘....."

수수께끼같은 일을 만나 너무 놀라게 되면 누구나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.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어른거리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,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. 그러나 나는 그때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 해 보아야
지리와 역사, 산수와 문법 따위임을 생각하고 (기분이 좀 언짢아서), 이 꼬마사람에게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. 그는 대답했다.

"괜찮아. 양 한 마리만 그려 줘."

나는 한 번도 양을 그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, 내가 그릴 수 있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다시 그려 주었다.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을.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사람은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.

"아냐! 아냐! 난 보아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. 보아뱀은 아주 위험하고,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워.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거든. 나는 양을 갖고 싶어. 양 한마리만 그려 줘."

그래서 나는 이 양을 그렸다.